[안재휘 칼럼] ‘사랑’과 ‘성추행’ 사이

편집국
news@joseplus.com | 2018-02-09 09: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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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단원 김홍도

(金弘道)의 풍속화는 250여 년 전 조선사회의 질박한 일상을 해학적으로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 빨래터는 당대의 빨래터가 신산한 삶을 사는 여성들의 즐거운 살롱이었음을 유쾌하게 보여준다. 어쩌면 여인들에게 빨래보다는 수다가 더 요긴했을 것이다. 이 그림의 백미(白眉)는 바위 뒤에서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훔쳐보고 있는 선비의 모습이다. 이 선비의 등장이야말로 작품의 가치를 폭발시키는 요소다.

 

김홍도보다 약간 젊은 신윤복(申潤福)단오풍정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빨래터보다 훨씬 더 노출이 심한 반라(半裸)의 여인들이 목욕을 즐기고 있고 그 위로 두 명의 어린 승려들이 훔쳐보고 있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서민과 여인들의 삶, 부도덕한 양반과 승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기 시작한 것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인한 신분제의 이완, 18세기 상업의 발달과 도시의 번영이 불러온 변화로 해석되기도 한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직장 내 성희롱 문제사회이슈로 급부상

 

창원지검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를 계기로 직장 내 성희롱 문제가 사회이슈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해 이후 미국 등에서 전개된 미투 운동(#ME TOO)’이 한국에서도 뒤늦게 강풍을 일으킬 조짐이다. 서 검사 폭로를 도화선으로 이효경 경기도의원, 이재정 국회의원 등이 성추행 고발에 동참하고 나선 데 이어, 민간기업인 금호아시아나 여성 승무원들의 미투합창이 터져 나왔다.

 

검찰과 법무부까지 발칵 뒤집어놓은 서 검사의 주장은 서울북부지검 특수부 소속이었던 지난 201010월 동기 여검사의 상가에 갔다가 안태근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부터 강제 추행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단장으로 하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꾸렸다. 하지만 서울북부지검 임은정 검사가 조희진 조사단장의 자격을 문제 삼으며 교체를 촉구하고 나서 일파만파다.

 

성차별적 구태, 좀처럼 개선되지 않고 있는 암울한 사회현실 노정

 

임 검사는 지난 2016년 의정부지검 근무 당시 상관으로부터 겪은 성폭력 경험을 폭로했다가 조 단장으로부터 폭언을 들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임 검사는 당시의 대화 등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비망록을 남겼다며 공개 투쟁까지 선언했다. 서지현 검사의 사례는 범죄를 다루는 검찰이라는 조직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일터에서의 성차별적 구태가 직종을 가리지 않고 개선되지 않고 있는 암울한 사회현실을 노정한다.

 

베스트셀러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로 유명한 여성시인 최영미가 쓴, 원로 시인 ‘En’의 상습적인 성폭력을 폭로한 시 한 편이 문단을 강타했다. 최영미의 시 괴물을 잠시 들여다보자.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 Me too /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최영미 시인의 성폭력 폭로 시 괴물한 편이 문학계 강타

 

감춘다고 했지만, 노벨상 후보에 오르내린 한국의 시인이 딱 한 명밖에 없으니 최영미의 은유는 실패(?)했다.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는데 그 동안 불거지지 않았을 뿐이라면서 터질 게 터졌다는 반응도 있고, 이렇게 문학계를 온통 성범죄 집단으로 오도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바야흐로 시대변화가 초래한 성 풍속의 변화와 가치관의 진화가 빚은 갈등이 온 나라를 한바탕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시인 류근은 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문인들 가운데 ○○시인의 기행과 비행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 얼마나 되느냐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大家)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서 눈앞에서 보고도, 귀로 듣고도 모른 척한 연놈들은 다 공범이고 주범이다. 눈앞에서 그 즉시 그의 손을 자르고 목을 베어야 옳았다고 맹비판했다.

 

미투기준이라면 김홍도.신윤복도 성범죄조장 중범죄인 쯤 될 것

 

최영미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을 지낸 시인 이승철은 자신의 SNS 계정에 올린 글을 통해 최 시인의 주장을 피해자 코스프레라며 강력 비난했다. 그는 최 시인의 방송 인터뷰를 거론하면서 한국문단이 마치 성추행집단으로 인식되도록 발언했기에 난 까무러치듯 불편했다“‘미투투사들에 의해 다수의 선량한 문인들이 한꺼번에 도매금으로 매도되는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뿐이라고 말했다.

 

옛날 남녀 사이의 애정은 대략 적극적일 수가 없었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나 뭐라나 일곱 살만 돼도 남녀가 한 자리에 앉지도 못하게 했던 시절이었으니 더욱 그랬다. 김홍도의 빨래터나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사람들에게 통쾌한 감동을 준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억지스럽고 고루한 비인간적인 윤리족쇄에 대한 반감의 표출이었을 것이다. ‘미투기준이라면, 김홍도나 신윤복도 성범죄를 조장하는 중범죄인 쯤 되지 않을까 싶다.

 

성추행논란, 정쟁의 도구나 보복의 빌미로 악용돼선 안 돼

 

성차별적 문화는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구태다. 이제 성 정체성의 차이를 기준으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명예를 농락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어쩌면 각계각층의 성추행 논란은 필연적인 과정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논란이 사회전반의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정쟁의 도구 또는 보복의 빌미로 악용돼서는 안 된다. 문제를 올바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엄정한 조사와 법률 재정비 등 그릇된 풍토의 혁신 쪽으로 가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아직도 낮은 수준인 우리의 성평등(양성평등 포함)’ 의식은 대폭 고양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성추행구습을 모든 직장의 문제로 일반화하거나 정쟁의 도구로 삼는 등의 부작용은 경계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시빗거리로 가득 찬 세상이 무절제한 논쟁으로 난장판이 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짝사랑은 위험하다. ‘고백의 용기가 범죄가 되는 것 역시 찰나의 문제다. ‘사랑성추행사이에서 아슬아슬 살아가는 청춘들이 빠져들기 십상인 다음 혼돈의 늪은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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