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말세(末世)’ 증후군

편집국
news@joseplus.com | 2017-12-29 12:07:35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미국 최대 동물보호단체인 노스쇼어 애니멀리그 아메리카(North Shore Animal League America)가 제정한 ‘영웅동물 스칼렛상’이라는 상(賞)이 있다. 이 상의 제정 유래는 20년 전 발생했던 뉴욕 주의 한 화재사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색(三色) 어미고양이 스칼렛은 불이 난 건물 안에 있던 다섯 마리의 새끼고양이들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다. 스칼렛은 다섯 번이나 불길 속을 드나들며 새끼들을 차례로 물고 나와 구해낸다.

 

화상을 심하게 입은 스칼렛은 새끼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동물병원으로 이송된다. 중화상을 입은 새끼고양이는 결국 죽었지만 스칼렛은 의식을 회복했다. 스칼렛은 무성했던 삼색 털을 잃고 마치 샴고양이처럼 피부가 드러나 흉측한 모습이 돼버렸다. 두 눈 중 한쪽 눈은 실명됐다. 스칼렛의 지극한 모성애 이야기는 그 장면을 지켜본 소방관 데이비드(David Gianelli)에 의해 알려졌고, 오랜 세월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감동적으로 회자된다.

 

부모가 자식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상초월의 잔혹시대 도래

 

질환을 앓고 있던 5살짜리 아이를 부모가 폭행치사하고 사체를 유기한 사건에다가 화마(火魔) 속에 3남매를 방치해 죽게 한 철없는 엄마 사건이 혀를 차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하다못해 짐승들도 제 새끼는 해치지 않는데 하물며 인간으로 태어나서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한탄한다. 재산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죽이는, 물질만능주의가 불러온 그악한 패륜을 넘어서 부모가 자식을 죽음 속으로 내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잔혹시대가 도래했다.

 

전북 군산에서 숨진 채 발견된 고준희(당시 5)양은 지난해 425일 아버지와 내연녀의 폭행과 학대 때문에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친아빠인 고 씨와 사실상 새 엄마였던 이 씨가 질병으로 고생하는 다섯 살배기 여자 아이에게 준 것은 돌봄이 아닌 학대였다. 결국 이 사건은 실종사건이 아니라 아동폭행 및 시체유기 사건이었던 것이다.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나날아 드러나는 진상은 점점 더 억장이 막히게 만든다.

 

삼남매 사망사건, 철없는 부모의 철없는 인생이 빚어낸 참사

 

이들은 같은 달 20일부터 발달장애와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걸어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진 준희 양에게 적절한 치료는커녕 밥을 먹지 않는다는 이유로 폭행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희 양이 사망하기 직전인 3월에도, 자신의 내연녀 이 씨를 힘들게 했다는 이유로 아이의 발목을 세게 짓밟았고 그 과정에서 딸이 심하게 다쳤지만 병원엔 데려가지 않았다는 아버지 고 씨의 기막힌 만행도 밝혀졌다.

 

지난해 1231일 광주 한 아파트에서 발생한 화재사고로 5, 3, 15개월된 삼남매가 목숨을 잃은 사건은 철없는 부모의 철없는 인생이 빚어낸 참사다. 화재 현장에 있던 삼남매의 친모인 23세의 A씨는 화재 현장을 빠져나와 혼자 살아났다. 불이 나면 자식을 먼저 구하는 게 정상적인 부모의 모습이다. 그런데 광주 화재사고는 친모만 화재현장을 빠져나와 목숨을 구했다고 하니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동학대 사건 눈에 띄게 증가81%가 친부모 범행

 

A씨는 처음엔 담뱃불을 이불에 비벼 끄다가 화재가 났다고 진술했지만 수사 과정에서 술에 취해 잘 기억나지 않지만, 라면을 끓여 먹으려고 가스레인지에 냄비를 올려놓고 잠든 거 같다.”고 진술을 번복했다. 정확한 화재원인과 경위야 어떻든 간에 불 속에 자식을 남겨두고 혼자 탈출했다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철없는 아이들이 아이들을 줄줄이 낳고 살다가 결국 다 죽게 만든 눈 뜨고 못 볼 참상이 펼쳐진 것이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아동관련 범죄 신고건수는 201417791, 201519214, 201629669건으로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신고된 사건 중 아동학대로 판명 난 경우가 절반이 넘는다. 2014년에는 신고건수의 약 59%127, 2015년에는 11천건(58%), 201618천건(62%)이었다. 10건의 신고사건 중 6건이 실제 아동학대인 셈이다. 특히 아동학대 사건의 약 81%가 친부모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선진국처럼 아동학대 사망사건에는 법정 최고형선고해야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의 원인으로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을 지목하기도 한다. 지난 2015년 대구에서 빵을 먹다 흘렸다는 이유로 5살 딸을 발로 차 숨지게 한 친부 신 모(34)씨의 경우 징역 26개월이 선고됐다. 같은 해 1월 대전에서 잠버릇이 나쁘다는 이유로 생후 17개월 된 딸의 온 몸을 압박붕대로 감은 채 9시간 동안 방치해 숨지게 한 친모 노 모(30)씨는 원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법조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양형규정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들기도 한다. 2014년 아동학대치사죄가 신설된 이후 최소 징역 5년 또는 무기징역까지 내릴 수 있긴 하다. 그러나 대법원 양형위원회 기준은 징역 6~9년형이다. 영국·독일·미국 등 선진국 법정의 경우 흉기가 없는 아동학대 사망 사건에도 살인죄를 적용해 예외 없이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고 있다.

 

잠재요인 제거에 국가사회 나서야체계적 부모교육도입 시급

 

자식을 때리고 방치해 숨지게 하고, 불이 난 집에 자식들을 버리고 도망치는 엄마가 공존하는 사회가 어떻게 온전한 공동체일 것인가. ‘말세(末世)’라는 탄식이 생경하지 않을 만큼 충격이 크다. 부모의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 게 아니다. 돈 없다고, 집 없다고, 배운 게 없다고 해서 부모자격을 모두 내려놓지도 않는다. 금수(禽獸)보다도 못한 부모가 될 지도 모를 잠재요인들을 제거하기 위해 국가사회가 나서야 할 때다.

 

소정의 부모교육을 이수하지 않은 커플에게는 아예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시중의 목소리를 아주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체계적인 부모교육도입이 시급하다.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부모가 되는 일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제 새끼를 살리려고 화마 속으로 뛰어드는 고양이만큼도 못한 부모들이 즐비한 세상이라면 무슨 희망이 있을까. 콩쥐팥쥐전보다도 훨씬 더 가혹한 일들이 우리 주위에 이렇게 널려있다니 가히 말세. 정녕 말세.

 

 

[ⓒ 조세플러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