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 길 따라 일렁이는 봄꽃…파사산 산수유

4월이면 노란색 물결로 가득…이천 백사면·양평 개군면 일원
서정현 기자
suh310@joseplus.com | 2017-04-13 10:17:27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

온 천지가 꽃으로 뒤덮이고 있다. 대지엔 초록물이 들고 봄 이슬 머금은 수목은 꽃잎을 피워댄다. 남녘은 매화꽃, 산수유꽃이 피고 지더니만 이어 개나리꽃과 벚꽃이 앞다퉈 피어난다. 하지만 봄이 늦은 경기권에서는 4월이 돼야 노란 산수유꽃이 만발한다. 이천 백사면과 양평 개군면 일원이 노란색 물결로 일렁거린다. 두 곳 중간 즈음에 있는 파사산까지 섭렵한다면 이봄 여행이 절대 섭섭하지 않을 것이다.

 

 강변 길 따라 일렁이는 봄꽃 파사산 산수유

 

봄 향이 집 안으로 한가득 밀려 들어오는 어느 하루, 날씨가 아까울 정도로 화창하다. ‘쑥 향, 달래 향, 냉이 향 등 들나물의 향내라도 맡으리라, 온전히 나를 위한 봄 여행을 하리라’는 생각으로 집을 나선다. 발길은 산수유꽃으로 유명한 양평군 개군면으로 향한다. 차창 밖, 아름다운 남한강변에도 아스라이 봄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지난해도 올해도 해마다 개군면의 내리와 주읍리 일원의 산수유 꽃마을을 찾았다.

주읍리 마을 입구에서 한 무더기의 하이킹 족이 빠르게 지나쳐 간다. ‘행복한 하루’ 되라고 서로 독려하면서 정겹게 손을 흔든다. 마을에는 수령 20년에서 200년도 더 된 산수유나무가 흐드러지게 노란 꽃을 피웠다. 농가의 담장이나 뒤뜰은 물론 구불구불한 논두렁 밭두렁 사이에 피어난 산수유꽃이 소박한 시골 마을을 화사하게 치장했다. 사람이 떠난 빈집을 말없이 지키는 산수유나무도 어김없이 꽃을 피웠다. 관광객도 거의 없고 주민의 모습도 보기 어려운 시골 마을의 봄 풍경이 마냥 매력적이다. 마을을 잇는 좁은 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서면서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주읍리를 찾은 젊은 관광객.
주읍리를 찾은 젊은 관광객.

 

 

마을 한 켠의 항아리 조형물.
마을 한 켠의 항아리 조형물.

 

낯선 길손에게 정 베푸는 동네 사람들

산수유의 아름다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멈춰 선 마을 농가 앞. 집 안에서 흘러나오는 도란도란 말소리에 홀려 빼꼼히 고개를 들이민다. 팔순을 앞둔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묵은 들깨를 창고에서 꺼내놓고 키질을 하려는 중이다. 지난해 수확한 들깨가 많이 남아 들기름을 짜서 팔려고 한단다.

할머니의 얼굴을 보니 ‘귀여운 노인’이다. 언젠가 들은 라디오 방송에서 “노인은 두 종류가 있다. 귀여운 노인과 노여운 노인이 있는데 이왕이면 귀여운 노인으로 늙고 싶다”고 한 어느 아나운서의 말이 생각나서 응용해본 것이다.

그들과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생각난 게 있다. 행여 시골 노인을 만나면 주려고 챙겨 다니는 사탕이다. 차 안에 남은 사탕 몇 개를 들고 집 안으로 들어서는데 할머니가 일손을 멈추고 방 안에서 플라스틱 용기를 들고 나온다. 내게 오디로 만든 효소를 주겠다는 것이다. 이런 순간 가슴이 훈훈해지지 않은 이 몇이나 되겠는가. 굳이 안 받겠다고 손사래 치는 할머니의 주머니에 용돈을 넣어드린다. 그저 집 안에서 뒹굴뒹굴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봄날을 놓치면 얼마나 아쉬울까. 조금만 움직여도 행복한 일이 생기는데 말이다.

마을 끝 쪽으로 더 올라간다.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놓은 항아리 조형물과 물레방아가 있다. 계곡은 봄 가뭄인지 물이 말랐지만 주변에는 산수유꽃이 어지럽게 얽혀 피었다. 소 대신 이제는 트랙터로 밭고랑을 가는 농부의 일손이 바쁘다.

근처에는 주읍산(칠읍산, 583m)으로 오르는 산행 안내 팻말이 있다. 주읍산이라는 지명은 산의 형세가 용문산을 향해 읍(揖, 두 손을 맞잡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리고 허리를 앞으로 공손히 구부렸다가 몸을 펴면서 손을 내리는 인사)하는 것 같다고 해서 붙여졌다. 또 칠읍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맑은 날 정상에서 보면 ‘읍’이 일곱 개 보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주읍리 마을풍경과 밭 가는 농부.
주읍리 마을풍경과 밭 가는 농부.

 

 

한적한 전원마을 도립리에선 그림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적한 전원마을 도립리에선 그림 그리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파사산에서 조망하는 남한강 절경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산을 즐겨 오를 것이다. 하지만 산행 대신 산수유나무 아래에서 달래도 캐고 냉이도 캐고 쑥도 캐면서 잠시 시간을 멈춘다. 사람 인기척에 놀라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조차 이 순간은 심심치 않은 친구로 여겨진다.

봄 햇살을 한가득 가슴에 담아서 파사산(婆娑山)으로 달려간다. 이천 백사면 산수유 마을로 가는 길목인 이포에서 파사산으로 접근할 수 있다. 37번 국도변 옆으로 주차장이 있지만 그냥 지나친다. 천서리 막국수촌을 지나 지평 방면으로 가다 파사산 팻말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선다. 이쪽 산길을 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파사산은 겨우 230.5m인데 생각 외로 가파르다. 쉽게 생각했다가 낭패를 봤던 옛 기억 탓에 이번에는 등산로를 달리한 것이다.

 

파사산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이포대교와 여주보.
파사산에서 내려다본 남한강 이포대교와 여주보.

 

‘수호사’라는 사찰에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오른다. 등산로에는 생강나무가 꽃을 피웠다. 이내 동문이 나오고 그 옆으로 복원된 산성(사적 제251호)의 성벽이 길게 이어진다. 퇴뫼식 석축 산성 성벽엔 여러 차례 개·보수한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다. 성내에서 문지 2개소, 수구지 1개소, 치(稚,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화살로 쏘기 위해 성벽 밖으로 군데군데 내밀어 쌓은 돌출부) 3개소, 우물지 1개소, 건물지로 보이는 8개의 평탄지가 확인됐다고 하는데 그저 전문가의 사료일 뿐이다. 여행객에겐 중요한 사항도 아니다.

복원된 성벽을 따라 정상으로 올라섰다가 성곽을 따라 아래쪽으로도 내려서 본다. 밑으로 내려갈수록 전망이 더 멋지다. 발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고 여주 이포보와 이포대교가 어우러진 풍경은 지상의 천국처럼 보인다. 서울을 향해 눈길을 주고 반대편 여주 쪽으로 눈길을 줘도 아름답다는 말밖에 더는 표현할 방법이 없다. 남한강 물줄기와 산세가 함께 어우러진 그림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파사산에는 마애여래상(경기유형문화재 제171호)이 있다. 이 마애여래상 정상을 기점으로 행정구역이 여주시와 양평군 관할로 나뉜다. 정상부까지 다시 올라 팻말을 따라 서북쪽으로 가면 거대한 암벽인 병풍바위가 나온다. 산봉우리 가까이 암벽이 넓게 둘러져 있는데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모양이 분명코 병풍처럼 보인다.

 

파사산 마애여래상.
파사산 마애여래상.

 

바위 앞에서 고개를 들어 바위 중간 즈음에 시선을 멈추면 고려 불상이 있다. 거대한 암벽을 수직으로 깎아 만든 5.5m 높이의 불상이다. 대구 동화사 염불암 마애여래입상이나 인접한 이천의 영월암 마애여래좌상과 비슷한 형식을 따랐다. 이곳은 암자 터로 추정된다. 불상의 남쪽 산 중턱에 50(165㎡)평 정도 되는 대지가 있는데 그곳에 자연석의 주춧돌이 묻혀 있었고 기와 조각 등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바위 속에서 흘러나오는 석간수 한 잔을 마신다. 꿀물보다 더 맛 좋은 약수다. 새로 발견한 유적지와 약수 한 잔에 감탄하고 있을 때 하이킹 복장을 한 사람이 다가온다. 남한강의 자전거도로를 따라왔을 그가 이 험한 곳까지 자전거를 끌고 올라왔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자전거를 타면 엄청난 근육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는 하이킹족이다.

 

개군순댓국은 연중 불경기가 없다는 유명 음식이다.
개군순댓국은 연중 불경기가 없다는 유명 음식이다.

 

 

이천에 가면 누구나 들르게 된다는 이천 돌솥쌀밥.
이천에 가면 누구나 들르게 된다는 이천 돌솥쌀밥.

 

노란 꽃 만발 백사면 경사리, 도립리

하루해의 시간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이천시 백사면의 산수유 마을(경사리, 도립리, 송말리) 중에서 도립리로 들어선다. 도립리 마을은 해마다 봄이 되면 ‘잔칫집’이 된다. 양평 개군면보다 일찍 알려져서 관광객이 많고 마을 안쪽까지 주민이 난전을 펼친다. 산수유 막걸리, 건산수유, 산수유 차 등 산수유 일색이지만 그것 말고도 마을의 농산물이 가판대에 놓였다. 1000원짜리 단호박 호떡을 하나 사들고 산수유 시목지라는 육괴정부터 찾는다. 산수유나무를 심은 여섯 명의 선비를 기리기 위해 만든 정자다. 정자 안 주춧돌 틈을 비집고 제비꽃이 앙증맞게 피었다. 야트막한 돌담이 있는 고샅길을 따라 산수유 군락지로 들어선다. 수령이 100년 넘는 것부터 500년 가까이 된 것까지 있고 어린 묘목을 심어서 나날이 개체 수가 늘어나고 있다. 산수유 꽃밭에서 사진 찍는 사람들, 그네 타는 사람들, 골목을 걷는 사람들, 나물 캐는 사람들… 모두 이 봄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도립리뿐 아니라 경사리나 송말리도 군락지를 이루지만 찾는 사람이 적다. 그래서 봄 풍치를 한껏 즐기기에 더 좋은 송말리로 간다. 마을 안쪽에 있는 천년 고찰 영원사도 보고 송말2리에 있는 연당으로 가 내하 숲과 연당이라 불리는 비보 못 주변을 둘러본다. 이 봄이 지나면 또 1년을 기다려야 함은 당연한 말. 느끼고 만끽하려면 서둘러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다. 

 

산수유 군락지로 알려진 송말리엔 천년고찰 영원사가 있다.
산수유 군락지로 알려진 송말리엔 천년고찰 영원사가 있다.

 

 

여행 데이터

 

글 · 이신화 여행작가

[ⓒ 조세플러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카카오톡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 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