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세대’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말 그대로 이도저도 아닌 끼여 있는 세대다. 유년기인 1960년대 빈곤의 시대를 지났고, 1970년대 유신시대에 청소년 시기를 보냈다. 1980년대는 경제성장을 갈망하는 동시에 민주주의도 갈망했고 1990년대 영원할 것 같았던 경제호황이 IMF로 터지며 온몸으로 불황을 겪어야 했던 세대다.
그리고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마지막 세대이면서 노후를 자식에게 의지할 수 없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모든 세대가 어렵고 힘들지만 낀세대 역시 만만치 않은 환경에 노출되었다. 이런 환경에 낀세대는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생각했다. 경제발전에 근간이 되었고 한반도 고조선건국 이래 최고의 풍족함을 누리는 땅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모든 낀세대가 다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기에 이제는 제대로 놀아보자고 말하고 싶다. 위대한 사업도 아주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일도 매일 하면 조금씩 쉬워지는 법이다. 다시 말해 실력이 곧 100세를 살아가는 인생의 기초가 된다는 말이다. 만약 제대로 놀 줄도 모른다면, 어쩌면 제대로 가르칠 줄도 모를 수 있다. 많은 경험과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후대에 전달해주는 즐거움이 없다면, 그것은 쓰지 못하는 금은보화와 같다.
언제까지 금은보화를 숨겨두기만 할 것인가. 재능을 꺼내 누군가와 나누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은 제대로 노는 것, 제대로 즐거움을 나누는 것부터 해야 한다. 나아가 그것이 곧 은퇴 이후 삶을 결정하는 중요한 동기가 될 수 있다. 회사를 열심히 다닐 무렵에도 나는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기계발 서적을 틈틈이 읽곤 했다. 내가 원했던 은퇴 후의 삶은 벌면서 즐기는 삶이었다. 많이 벌지는 않지만, 시간이 있고 그래서 그 시간을 온전히 즐기는데 투자할 수 있다면 그것은 멋진 삶이 아니겠는가.
책 속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재테크부터 강의할 수 있는 지식까지 많은 부분에 대한 간접 경험을 통해 내 자신 속에 새로운 것들을 쌓아둘 수 있었다. 그것은 공부가 아니었다. 지도 같은 것이었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삶에서 필요한 것들은 저축해 놓는다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직장을 다니면서 웃음치료사 교육을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반대가 심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당시 아내는 내가 받는 교육에 대한 의문이 컸던 모양이었다.
“지금 있는 직장에 충실하면서 저축하여 나중에 하고 싶은 일 하면 되지. 뭐 하러 큰 돈 써가면서 교육을 받나요?”
나 역시 그런 아내를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시키지 못했다.
“아,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인데 왜 그래!”
그 결과 아내는 내 교육에 대해 강한 부정과 함께 지원도 끊어버렸다. 나 또한 그런 아내를 뒤로 한 채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가며 교육을 받았다. 말 그대로 빚내서 공부한 셈이다. 항상 그렇다시피 무리한 일은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빚내서 교육을 받기는 했지만 점점 빚은 커져 갔다. 결국 아내에게 사실을 고백했다. 정말 이 일이 하고 싶고, 이 일이 나중에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아내는 못미더워 했지만 결국 나를 이해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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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춘식 소장 |
진심은 진심으로 통하게 되는 법이다. 아내의 허락까지 맡았으니 나는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나갔다. 아니, 정확히 공부가 아니라 즐거움을 찾는 것이었다. 그렇게 은퇴 전 10년의 시간이 지나고 불과 1~2년만을 남겨놨을 때 나는 이미 주말에 강의를 나갈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상태였다. 그러자 진심으로 은퇴가 기다려졌다. 빨리 퇴직해서 마음껏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회사의 구속 없이 나의 스케줄로 사람들과 만나면서 나와 그들 모두를 즐겁게 하는 일을 실컷 누리고 싶었다.
마침내 은퇴를 했을 때 나는 본격적인 1인 기업으로 나섰다.
직접 강의할 기관을 찾아가 나를 소개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돌리면서 기다렸다. 처음 그 대가는 그리 대단하지 않았지만 점차 사람들은 늘어갔고 내 강의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건대 나는 퇴직 후 비로소 구속된 삶에서 벗어나 나를 위한 삶을 살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삶에 안정과 즐거움이 스며들자 세상은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이 생기기 시작했다. 1천여 명 이상이 모여 있는 강단에서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게 된 것이다.
모두가 은퇴 후의 삶에 어느 정도 불안감이 있다. 그것은 돈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한 위치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공포가 마음 속 어딘가에 자리 잡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준비된 삶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리고 그 준비된 삶이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인생의 가치는 빛나게 된다. 은퇴 후부터 내 삶의 드라마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놀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를 위한 일이고 남을 위한 일도 함께 할 수 있어서다. 앞으로 놀 줄 아는 사람이 인기도 많고 더 대접받을 거다. 나 자신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수고했으니 이젠 좀 놀아보자. 놀면서 돈까지 버는 사람이 생기고 있다. 놀자. 놀이 속에 의미와 경제적 활동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본다.
윤춘식 소장
‘윤춘식 올(All)통합교육컨설팅’의 대표로, 은퇴 후 강사, 컨설턴트, 행사 MC, 경영자로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 기업, 기관, 협회, 학교 등 흩어져 있는 교육분야의 통합을 꿈꾸며 ‘윤춘식 올(All)통합교육컨설팅’을 세웠다. ‘올(All)통합교육’이란 20년 넘게 교육분야에 있었던 경력을 살려, 파트너들과 협업으로 강사양성과정을 운영하는 교육컨설팅 업체다.
이메일: y858600@hanmail.net / alledu-yoo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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