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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고목(枯木)에 새순(筍)이 돋아나는 걸까. 엊그제 치러진 제57회 납세자의 날 행사를 지켜본 필자의 남다른 감회다. 그간 국사에 바쁘시겠지만 ‘납세자의 날’ 하루만이라도 납세국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대통령이 행사장에 꼭 참석해줄 것을 간곡히 바랐던 나로서는 ‘납세자의 날’이 다시 태어난 느낌이다. 이날 대통령의 경호문제로 언론의 취재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참석으로 인해 격조 높은 행사가 모처럼만에 부활됐다.
우선은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함으로써 수상자들의 표정에도 자긍심이 잔뜩 묻어났다. 현직 대통령이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1970년 이후 물경 53년 만이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은 어려운 경제 여건 속에서도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이행하는 분들께 직접 감사를 전하기 위해 납세자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고 전했다. 필자의 현장기자 시절, 납세자의 날 행사는 그 규모나 분위기 면에서 가히 국보급 잔칫날다웠다. 우선은 대통령이 기념식에 참석함으로써 국민의 관심은 물론 수상자들의 자긍심 또한 대단했다. 제1회 때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시민회관(지금의 세종문화회관)에서 참으로 성대하게 기념식을 치렀다. 아마도 4회 때까지 대통령이 직접 참석함으로서 수상자들의 긍지와 보람을 한껏 심어줬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국무총리 참석으로 그 격이 달라지더니 어느 해에는 국세청장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며 기념식을 끝낸 적도 있다. 납세자의 날은 원래가 ’세금의 날‘로 출발 했다. 국세청 개청 다음해인 1967년, 국민의 성실납세에 대한 감사와 함께 건전한 납세의식 고양을 위해 매년 3월3일을 ’세금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다가 1973년 ’세금의 날‘과 ’관세의 날‘을 일원화하여 ’조세의 날‘로 개칭하더니 2000년 들어서 부터 지금의 납세자의 날로 부르고 있다.
이른바 선진사회라는 곳은 ‘납세’에 대해서만은 인식이 유별한 것 같다. 미(美)대통령의 대(對)국민 연설문을 봐도 그런 배려가 묻어난다. 우리네처럼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납세자 여러분(tax payers)…”으로 서두를 꺼낸다. 납세국민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움이 늘 마음속에 스며있음이다. 이런 정서로 인해 그곳 성실납세자들은 소리없는 가운데 사회적으로 늘 존경의 대상이 된다. 이에 비해 우리는 아주 특별한 ’날‘까지 만들어 주면서 떠들썩하게(?) 납세자들을 모시고 있다. '납세자의 날‘을 제정해 성실 고액납세자에 대해서는 훈.포장 등 푸짐한 상도 내려 준다. 최소한 ’납세자의 날‘ 만큼은 그렇다. 그리고 그 날이 지나면 잔잔한 여흥의 흔적도 없이 그것으로 끝이다. 아무런 감동이나 여운을 남기지 못한 채 ‘어제와 같은 오늘’이 또 반복된다.
납세자의 날을 화려하게 치러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최소한 납세자의 날 제정의 뜻을 살리면서 이에 걸 맞는 행사가 됐으면 싶은데, 해를 거듭할수록 이날의 행사는 초라해지고 있다. 국민의 납세의식 고취차원에서 정부가 앞장서 이날의 분위기를 한껏 띄울 만도 했는데 너무나 관행적 행사로 끝을 냈다. 그러자니 납세국민들이 느낄만한 어떤 감동이나 여운도 찾아보기 힘든 처지에 이르렀다. 물론 ’납세자의 날‘ 의미가 외적인 행사 규모로 대변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날이 국민의 납세의식을 고양하고 신성한 납세의무에 대한 보답 성격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보다 격조(格調)높은 장(場)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 사실 대통령은 매년 납세국민 앞에 직접 나서 감사의 표시를 할만도 하다. 나라살림을 위해 성실하게 세금 내 준 납세자들의 자긍심 고취를 위해서도 그렇고, 납세국민들의 성실납세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납세자의 날 기념식만큼은 여느 연례행사와는 달리 마음과 정성이 듬뿍 담긴 그런 분위기를 연출해 가야 한다.
필자는 이와 관련, 한동안 시행해 왔던 ‘조세의 날’ 명칭을 ‘납세자의 날’로 개칭한 것에 적잖이 아쉬움을 갖고 있다. ‘조세’라는 신성한 주체가 ‘납세자의 날’이라는 보편적 행사(?)개념에 묻혀가고 있기에 하는 말이다. 의미가 모호한 납세자의 날을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조세’라는 주체를 놓고 정부와 납세국민 모두가 한번쯤 생각을 해보는 그런 ‘특별한 날’이 돼야한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의 납세의식 제고라는 미래의 세원배양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며, 납세국민 또한 그들대로 세금이 공동사회의 공동비용이라는 평범한 이치를 되새기는 그런 날이 되어야 한다는 바람이다. 매년 ‘어제 같은 오늘’이 반복 되는 ‘납세자의 날’이라면 이는 신성한 납세의무를 정부 스스로가 폄훼하는 거나 다름이 없다. “납세자의 날, 이대로 좋은가”―. 모두가 한번쯤 생각해볼 시점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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