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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기에 나에게는 소중한 취재원(?)이기도 하다. 만나면 자연 화제의 중심이 과거지사로 돌아가지만 그 대화 속에는 쉽게 흘려버려서는 아니 될 금과옥조가 있다. 시대적 상황에 의해 세정이 굴절되는 아픔 속에서도 나름의 선(線)을 지켰던 일들, 한창 나이에 세정현장에서 마음껏 기개를 펼쳤던 경험담들은 결코 일과성 무용담이 아니다.
그 얘기 속에는 세무행정을 왜 ‘기술 행정’이라 부르는지 분명한 답이 스며있다. 속된 말로 ‘잘 굴리기만 하면 알아서 돌아가는 것이 조장행정’이라지만 국세행정만큼은 녹녹한 구석이 별로 없다. 납세자 불만을 최소화 하면서 소리 안 나게 과세행정을 구사하려면 여기에는 분명 ‘운영의 묘’가 있어야 한다. 그만큼 오랜 현장 경륜이 필요한 것이 국세행정이다. 수십여 성상(星霜), 국세공무원으로 봉직한 그분들이야 말로 세정의 숙련공이자 세정기술자인 셈이다.
그 분들은 현재 대형 로펌 또는 회계법인, 세무법인 등지에서 각자의 전문성을 살려가고 있지만 국세행정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다. 간혹 혹자들은 국세청 최고위직에 머물다가 180도로 입장이 바뀐 외형적 변화를 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너무나 속 모르고 하는 얘기다.
비록 지금은 고객(기업)의 중량감 있는 세무조력자로 직분이 바뀌었지만 기업 일방만을 고려한 얄팍한 세무전략 자문 따위는 꿈도 꾸지 않는다. 그 보다는 기업이 합리적인 납세의사 결정을 하도록 권유하는 쪽에 무게를 더 두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현 국세공무원들의 직무상 소양능력을 되레 걱정하고 있다. 이는 대형로펌 등지에서 몸담고 있는 국세청 출신들의 공통된 우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가슴 속에는 국세행정 발전을 위한 염원과 현직 후배들에 대한 깊은 애정이 어우러져 있다. 대형 로펌의 어느 고문의 지난 얘기를 들어 보자. 국내 유수 기업들은 국세청의 정기세무조사에 앞서 자체 시뮬레이션(?)에 들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이름 하여 ‘모의(模擬) 세무조사’다. 이때 자문 계약 관계에 있는 로펌의 조세팀이나 회계 또는 세무법인의 내놔라하는 조세전문가들이 이에 관여한다. 실제상황에 버금가는 도상훈련을 통해 회계상의 쟁점 소지를 조목조목 들춰내어 기업 측에 ‘유비무환(有備無患)’을 환기 시킨다. 실제 세무조사 시 이 부문에 대해 조사공무원이 물고 늘어지는 경우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다. 그러니까 조사공무원 입장에서는 조사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결정적 ‘키 워드’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번은 모의 세무조사를 통해 20여 가지 문제 부문을 적출, 기업 측에 ‘요(要) 주의’ 의견을 냈단다. 기업 경영진 입장에서는 떨떠름하지만 수용할 수밖에 없는 예민한 사안을 꼭 찍어낸 것이다. 헌데 그 고문은 자신의 모양새만 구기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실제 세무조사 과정에서 앞서 지적된 20여 가지 문제 항목 모두가 ‘조사의 손길’이 미치기는커녕 그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고문은 공연이 헛다리(?)짚어 기업 측에 겁을 준 결과가 된 셈이다.
물론 이 같은 예는 하나의 작은 케이스로 치부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업 세무조사에는 일련의 흐름과 감(感)이란 것이 있는 법인데 정예조직을 자랑하는 조사공무원들의 실무적 감각이 너무나 아쉽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를 두고 세정가 사람들은 전산에 크게 의존하는 최근의 세정패턴을 탓하고 있다. 기계적으로 업무를 다루다 보니 업무수행상의 창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문명의 이기(利器)가 가져다주는 일종의 역기능이다. 기업 장부(帳簿)의 잉크 색깔만 봐도 탈세의 감을 잡았다는 아날로그 시대의 조사요원들― 그 시절을 그리워 할 필요까지는 없지만, 기계세정이 기술세정을 잠식하는 풍조가 걱정스럽다. 기계세정과 기술세정의 성과는 그 격(格)이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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