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재휘 칼럼] 중국몽(中國夢), 한국몽(韓國夢)

편집국
news@joseplus.com | 2017-12-27 08: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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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주화파 이조판서 최명길은 말한다.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사옵니다.” 척화파 예조판서 김상헌이 말한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고 삶을 구걸하느니 사직을 위해 죽는 것이 신의 뜻이옵니다.” 청(淸)과의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 적진에 다녀온 이조판서 ‘최명길’의 목을 베라는 대신들의 빗발치는 요구에 인조가 비명을 지른다. “그만들 하라. 청군이 성을 둘러싸고 있는데 어찌 밖이 아니라 안에서 서로를 죽이라 하는가.”


영화 ‘남한산성’은 원작소설과 사뭇 다른 맛이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애국심(愛國心)이 부정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병자호란의 참화가 남긴 진짜 교훈은 서로 정반대의 길을 말하는 그 애국심의 질량 따위의 경중에 있지 않다. 대세를 좇을 것이냐 명분을 좇을 것이냐의 옳고 그름 또한 논설의 대상이 아니다. 백척간두에 놓인 국가위기 앞에서 그저 “저 자들의 목을 베소서!”하고 외쳐대는 그 살의에 더 큰 절망이 숨어있다.


대한민국, 국제무대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지경 빠져들어
대한민국이 국제무대에서 사면초가(四面楚歌)지경에 빠져들었다. 한반도 평화를 기필코 지켜야 하는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움직일 공간이라곤 조금도 남아있지 않다. 가장 불리한 환경에서 국가지도자가 된 문재인 대통령은 그런 측면에서 참 불운하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무조건 막아야겠는데, 북한은 도통 말을 듣지 않는다. 미국을 끝까지 몰아붙이며 약을 박박 올려대고 있다. 미국 또한 북한을 그냥 둘 수도, 칠 수도 없는 고약한 지경에 이르렀다.


아마도 문 대통령은 중국이 도와주기만 하면 해법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른 듯하다. 그 판단은 결코 그르지 않을 것이다. 북한에 관한 한 말발이 먹힐만한 국가란 중국 말고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옳다. 그러나 접근방법이 옳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강고한 한미동맹을 기조삼아 필요할 때는 강하게 나가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를 길들이려는 중국의 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비판이 하늘을 찌른다.

 
한국 길들이려는 중국 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비판 하늘 찔러
문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을 놓고 뒷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정치적 편견 속에서 새 정부의 국정운영 전반을 무작정 못마땅해 하는 사람들의 반대를 위한 반대에 편승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중국방문 중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대학 영걸교류중심에서 가진 연설이 자꾸만 귀에 걸린다. 아무리 좋은 해석으로 갈무리해보려고 해도 여지가 안 보인다. 도대체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걱정이 자꾸만 막아선다.

문 대통령은 “중국은 단지 중국이 아니라, 주변국들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이다.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지는 것과 같다”며 “중국몽(中國夢)이 중국만의 꿈이 아니라 아시아 모두, 나아가서는 전 인류와 함께 꾸는 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 대목은 더 문제다. 문 대통령은 “한국도 작은 나라이지만 책임 있는 중견국가로서 그 꿈에 함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중국몽에 한국이 같이 하겠다’는 이야기 곱씹어볼수록 해괴
‘중국이 주변국과 어울려 있을 때 그 존재가 빛나는 국가’라느니, ‘높은 산봉우리가 주변의 많은 산봉우리와 어울리면서 더 높아진다’는 말 자체가 이미 정상간 예의적 수사(修辭) 차원을 넘어선 외교적 아첨이다. ‘중국몽에 한국이 같이 하겠다’는 이야기는 곱씹어볼수록 해괴하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중국몽은 ‘봉건왕조 시기 조공질서를 통해 세계의 중심 역할을 했던 전통 중국의 영광을 21세기에 되살리겠다는 의미’라고 설명돼 있다.


노영민 중국대사는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신임장을 전달하면서 방명록에 ‘만절필동 공창미래(萬折必東 共創未來)’라고 적었단다. ‘천자를 향한 제후들의 충성’을 의미하는 ‘만절필동’을 한국의 대사가 쓴 것이다. 논란이 일자 노 대사는 지난 2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 때 당시 바른정당 원내대표였던 주호영 의원도 ‘만절필동’이라는 사자성어를 인용했다는 어설픈 핑계를 댔다.


외교현장에서 이상한 일들 잇달아 일어나고 있음 틀림없어
그러나 주 의원이 쓴 ‘만절필동’은 ‘바른정당이 보수의 동쪽이 될 수밖에 없도록 정치에는 바른정당, 정책에는 빠른 정당이 되어 보수의 새로운 중심이 되겠다’는 역설이었다. ‘종주국’ 노릇을 하면서 온갖 수탈을 일삼던 중국정부에다 대놓고 쓴 ‘만절필동’과,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의미로 쓴 주 의원의 ‘만절필동’은 결코 같을 수가 없다. 한국 외교현장에서 뭔가 이상한 일들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음이 틀림없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중국공산당세계정당고위급대화 2차 전체회의 기조연설에서 “저는 중국공산당의 최고지도자이자, ‘신시대의 설계사’인 시진핑 총서기께서 주창하신 ‘두 개의 10년’과 ‘중국의 꿈’이 세계 평화와 번영에 공헌할 것으로 기대하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이징대학 연설과 추미애 대표의 발언, 그리고 노영민 중국대사의 방명록 기록에는 뭔가 일관하는 연결고리가 느껴진다.

  
대한민국 처지 가슴 아파도 국가적 자존감 놓아서는 안 돼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참사관, 미 국무부 한국과장 등을 역임한 데이비드 스트라우브(David Straub)의 비판은 예사롭지 않다. 그는 한 신문칼럼에서 “시진핑의 중국몽이란, 중국이 동북아의 지배적인 나라가 되고, 궁극적으로 세계의 지배적인 나라가 되겠다는 것”이라며 “그것도 공산당 독재체제를 유지하면서 그러겠다는 것”이라고 환기했다. 그러면서 “민주화를 위해 싸웠다는 문 대통령이 어떻게 그런 꿈에 동참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일갈했다.


대한민국 탄생 70년간 한중외교에서 우리 대통령이 스스로 소국이라 스스로 낮춰 부르고, 상대를 대국으로 우러른 적이 없다는 비판에 가슴이 저리다. 열강들의 파워게임에 속절없이 끼이고, 지구촌의 별종 북한의 외고집에 짓눌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처지가 안타깝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국가적 자존감을 놓아서는 결코 안 된다. 우리들 말고, 우리의 꿈(夢)을 따로 지켜줄 사람은 세상에 없다. 살얼음판 위에 놓인 나라 안에서, 사색당파에 눈이 멀어 서로 손가락질하며 “저 자들의 목을 베소서!”하고 외쳐대는 몽매한 정치꾼들의 목소리에 한숨이 절로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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