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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까지는 매월 셋째 주 화요일을 '세금 문제 현장 소통의 날'로 지정해 운영했으나, 납세자에 대한 서비스를 강화한다는 한승희 국세청장의 소신에 따라 현장 소통의 날을 폐지하고 ‘소통주간’을 도입키로 한 것이다. 국세청은 세무관련 상담을 원하는 이들이 세무서 납세자 보호담당관에게 전화(국번 없이 126으로 연락 후 3번 선택)로 신청하면 사안에 따라 전화상담 또는 현장방문 상담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등 상시 소통체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제도적으로는 납세자와의 소통 채널이 활짝 열린 셈이다. 하지만 납세자들이 진정 원하는 ‘당국자와의 소통’은 어떤 것일까. 의례적인 세무관련 상담보다 과세여부로 논쟁이 빚어지는 일선 조사현장에서의 진정한 소통을 원하고 있다. 납세자들이 정당한 주장을 펼 수 있는 명실상부한 ‘대화 창구’가 일선 현장에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선 세무조사 현장에서의 실상은 어떠한가, 기업들의 반응을 보면 소통자체에 회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납세자와의 불필요한 접촉차단 및 유착 가능성 방지에 역점을 두느라 국세행정의 경직성이 심각하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공무원들의 대체적인 속성을 감안할 때 자칫 타성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납세자와의 음성적인 접촉은 당연히 차단돼야겠지만 납세자들이 정당한 주장을 펼 수 있는 ‘대화의 기회’마저 단절될세라 걱정을 하고 있다.
실은 세무조사에 대한 납세기업들의 인식도 바뀌어진지 오래다. 막연한 불안감에서 무조건 손을 비벼대던 과거와는 달리 무장된 논리로 세무조사에 임하려 한다. 그러니까 여차 할 경우 기꺼이 법정싸움으로 가겠다는 것이 요즘의 기업정서라고 봐야 한다. 다만 조사 진행과정에서 조사공무원과의 시각차이가 큰 쟁점부문에 대해서는 과감한 대시로 설득에 나설 뿐이다. 대화가 통하지 않을 경우, 때로는 자기 논리의 정당성을 관철키 위해 연(緣)을 동원 한다. 일종의 자기방어 수단이다.
얼핏 보면 공적업무에 사(私)가 끼어드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으나 긍정적 의미에서 본다면 외국의 협의과세를 연상 할 수도 있다. 양자 간의 도덕적 양심 속에 이루어만 진다면 오히려 자유로운 의견교환으로 당국과 납세자간의 사전 합의를 이끌어 내는 순기능(純機能)도 있다는 점, 부정 할 수만도 없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의 현실은 양심에 기댈만한 처지가 못 된다. 당국은 당국대로, 또 납세자는 납세자대로 서로가 불신감을 갖고 있으니 대화가 쉽게 열릴 리가 만무하다. 정작 열려야 할 현장에서 대화 채널이 닫히는 이유다.
세무조사는 경우에 따라 납세기업의 생사(生死)를 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고도의 조정력이 요구되는 분야이다. 그런데 ‘조사 팀’에 따라서는 아직도 경직된 제도세정의 고정관념만 가지고 개별기업의 특수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음으로서 기업을 몹시 힘들게 하고 있다는 얘기다.
납세자들은 조사공무원들의 이 같은 개별기법이나 행동철학이 소속 장(長)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조사에 임하는 당해 요원들의 됨됨이를 보면 소속 장(長)의 면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속 책임자들의 세정철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 일게다.
물론 탈세기업에 대해 엄격히 응징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사업체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무리한 내용을 고집함으로서 납세기업으로부터 원망과 불평만 사는 어설픈 기법들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대화 창구’를 아무리 활짝 열어놓은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건 소통이 아니다. 진정성이 소통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한승희 국세청장의 ‘소통세정’이 목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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