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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동길 숭실대 명예교수 -남해포럼 공동대표 중소기업대학원장 |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100일이 지났다. 집권 초에 서둘러 추진하는 정책은 파격적이다. 고소득자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부자증세', 비정규직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건강보험 보장 강화와 탈(脫)원전 정책 등이 그것이다.
새로 출범한 정부인데 '하고 싶은 일'이 왜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유능한 정부라면 조급증을 떨쳐내야 한다. 소득은 성장의 결과인데 소득(임금)을 늘리면 소비와 투자가 증가돼 성장을 이룰 것이라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 아닌가. 임금 높이기보다 성장이 앞서야 한다. 임금은 한편으로는 소득이지만 다른 편에서 보면 비용이다. 기업이 고비용으로 경쟁력을 잃으면 성장도 임금지급능력도 사라진다. 소득주도 성장은 '임금주도' '세금주도' '부채주도' 또는 '정부주도'성장이나 다름없다. 인기에 연연하면 일을 그르치기 십상이다. 아무리 유능한 정부라도 모든 일을 한꺼번에 다 할 수 없다. 물적·인적자원과 예산 등 동원할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허버트 스타인 교수는 1992년 11월 한 신문 칼럼에서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에게 "대통령 당선자들은 취임 100일의 위업에 마음을 뺏긴다. 그러나 취임 후 100일 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할 것이 아니라 앞으로 20년 동안 미국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4년간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집권 기간의 성취는 10년, 20년, 100년 후의 바람직한 모습의 국가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주춧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5년 임기의 정권에게 20년 후를 생각하라는 주문은 무리일까. 국가적 과제를 해결해 가는 일이 쉬울 리가 없다. 어려움이 어디에서 비롯됐든 국가적 과제를 푸는 건 집권한 정권의 몫이다. 전(前) 정부에 탓을 돌린다고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우리의 외교·안보상황과 경제전망은 밝지 않다. 안보를 다지는 일에 머뭇거릴 까닭이 있는가.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등 복지강화는 재정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다. 국가부채는 올해 7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산타클로스 같은 정책이라고 걱정하지만 충분히 재원을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따져 봐도 재원마련방안은 분명하지 않다. 정부는 "5년 동안은 문제없다"고 하지만 5년만 버티면 될 일은 아니다. 한 번 늘여놓은 복지는 줄일 길이 없어진다.
문 대통령은 "국민이 합의하면 증세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근로소득자의 거의 절반이 면세자인데 고소득자와 법인세 등 소수의 부담만으로 복지수요를 충당하기엔 턱없이 모자란다. 더욱이 법인세 인상은 세계적 추세와 역행할 뿐 아니라 일자리 창출과 배치된다. 복지확대는 우리가 가야 할 길이지만 국가재정을 축내면서 가서는 안 되는 길이다. 보편적 복지는 보편적 과세로만 가능한 것인데 "서민과 중산층에 대한 증세는 없다"고 했으니 복지비용을 누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결국 미래 세대에 짐을 지우는 국가부채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프랑스 혁명 당시 좌파 자코뱅당 지도자 로베스피에르는 비싼 우유 값을 불평하는 서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우유 값을 반으로 내리라고 명령한다. 명령을 어기면 단두대에 세우겠다고 협박→농민들 비싼 건초 값 때문이라며 젖소사육 포기→암시장 우유 값 폭등→건초 값 인하 명령→건초생산 감소→건초 값 폭등→우유공급 감소→우유 값 폭등. 부작용을 외면한 인기정책의 결과는 이렇다.
복지를 확충하기 위해 서두를 일은 복지의 기반 강화다. 그건 바로 기업의 기(氣) 살리기와 경제 활성화다. 최상의 복지는 퍼주기가 아닌 일자리에서 찾아야 한다. 공무원 증원이 일자리 창출은 아니다. 일자리는 기업이 만든다. 경제와 복지에 관한 한 정부가 할 일은 기업을 뛰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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