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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본사 논설고문, 前 한국기자협회장 |
주자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주희(朱熹)는 중용에 대해 “‘중(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어 있지 않아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며, 용(庸)은 일상생활에 있어서 평상(平常)됨을 나타내는 뜻”이라고 주석했다. 그러므로 중용은 치우치거나 기대어 있지도 않고 지나치거나 모자람도 없는 중덕(中德)뿐만 아니라, 꾸준한 용덕(庸德)을 겸비하여야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흑백논리 속에 극단적으로 맞서 죽고살기 식으로 맞서 청백전을 벌여왔던 강퍅한 우리 정치사는 좀처럼 중도주의(中道主義)의 틈새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빚어진 부조리와 불합리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것인 사실이다. 지난 총선과 탄핵정국을 통해서 만들어진 우리 정치권의 ‘다당(多黨)구조’는 실로 중대한 변곡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정치가 사회의 다양한 가치분화를 제대로 담아낼 것인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5대 정당 구성원 성향 분석하면 모두 기형적인 형태
2017년 종반으로 접어들면서 정계개편론이 무성하다. 바른정당이 쪼개져 교섭단체 지위를 잃었고, 국민의당도 흔들리고 있다. 미구에 정치권의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난무한다. 5당 구조가 깨어질 것이라는 예상에서부터 결국 보수 대 진보의 1대1구도로 재편될 것이라는 극단적인 전망도 나온다. 바야흐로 정치인들의 계산기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각자의 입지가 유리해질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을 것이다.
5대 정당 구성원들을 성향으로 포괄분석하면 하나같이 기형적인 형태가 보인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다수의 진보와 소수의 중도로 구성된다. 자유한국당은 다수의 보수와 소수의 중도가 섞여 있다. 국민의당은 진보와 중도가 반반 쯤 되지만 호남이 기반이라는 점에서 진보가 조금 더 강하다. 보수와 중도가 반반 정도이던 바른정당은 중도 쪽만 남았다. 정의당은 스스로 표방하듯이 진보정당 반열에 있다.
출신지역 때문에 발이 묶인 정치인들 수두룩해
이처럼 이념적 스펙트럼으로서의 명징한 정당구조가 아닌 까닭에 다당제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서 나뉜 변태적 이합집산(離合集散)일 따름이다. 바른정당의 균열도, 국민의당의 내부지진도 결국은 이 불안정 구조에 기인한다. 혁신방안으로 ‘정계개편’을 말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념적 성향대로의 ‘헤쳐모여’를 가로막고 있는, 좀처럼 깨어지기 힘든 강력한 요소는 따로 있다.
그것은 바로 정당이 갖고 있는 ‘지역성’이다. 시나브로 튀어나오는 ‘전국정당화’란 구호는 ‘세력 확장’의 야욕표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지역성을 갖지 못하는 정당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정치인들은 선거에서의 당락에 어떤 깃발이 유리한지에 대해서만 골몰한다. 정치거목들과의 사사로운 인연이 정당선택의 결정적 요소가 되기도 한다. 출신지역 때문에 발이 묶인 정치인들은 수두룩하다.
정치권의 재편논쟁, 오직 정치인들 계산기에서 비롯
민심은 여전히 다당제를 선호한다. 지난 11월초 문화일보가 여론조사기관 엠브레인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결과에서 바람직한 정당 구조를 묻는 질문에 무려 65.0%의 응답자가 ‘다당제’라고 답했다. ‘양당제’를 꼽은 비율은 29.4%에 불과했다. 한국당 지지층 가운데서 48.7%가 양당제를 선호한다고 응답한 것이 이채롭다. 아무래도 보수의 완전한 몰락을 우려하고 있는 사람들이 집결하고 있는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듯하다.
여론조사 결과는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인들 셈법에 다수 민심이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지금까지 그랬듯이 정치권의 재편 논쟁은 오직 정치인들의 계산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정당구조에 대해 가장 고민이 큰 쪽은 문재인 대통령이어야 맞다. 현재의 정당구도는 의회권력과 행정부 권력의 이원적 정통성이 충돌하는 여소야대의 부정적 요소가 극명하게 노출돼 있다.
‘유승민’과 ‘안철수’, 다양화 기적 여부 결정할 변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느긋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한다. 바로 국민들의 굳건한 지지율이다. 소속은 다르지만 국민의당 쪽 호남정치인들이 문재인정권의 곤경을 끝내 외면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도 있다. 결정적인 실정이 나오지 않는 조건에서 문 대통령의 치세에 내응할 세력이 만만치 않다는 계산이 나온다. 최대변수인 문 대통령이 ‘헤쳐모여’를 서둘러 외칠 이유란 당분간 없다는 분석이 맞을 것이다.
‘유승민’과 ‘안철수’는 우리 정치가 중도주의의 가치를 제대로 실현해낼 수 있는 다양화의 기적을 일궈낼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 변수로 떠올라 있다. 두 사람의 정치적 의식도 그렇고, 현실적으로 처한 형편을 들여다보면 조건이 너무나 닮아 있다. 유승민은 스스로 밝혀왔듯이 ‘개혁적 보수’다. 사실상 ‘합리적 진보’라는 개념과도 멀지 않지만 그는 굳이 ‘진보’라는 말을 사양한다. 그는 ‘참 보수’라는 말을 즐겨 쓴다.
시대정신 담은 ‘중도정책’ 만들어야 비로소 길 보일 것
‘안철수’는 정치권 진입하기 이전부터 ‘개혁’의 아이콘이었다.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참신성과, 컴퓨터 바이러스를 치료하는 기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기여한 ‘희생’과 ‘봉사’의 의미도 컸다. 그의 생각은 결코 ‘진보’의 사슬에 종속되지 않았지만, 정치를 그 쪽에서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보수정권이 한창일 때 정치를 시작해야 하는 시대적 조건이 진보 쪽으로 그를 내몰았다. 세월이 흘러 그는 다시 ‘중도’의 열병을 앓고 있다.
‘유승민’은 꼴 보수 대구경북(TK)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안철수’는 진보의 심장인 호남에 절대적인 정치적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처지가 되고 있다. 결국 ‘유승민’과 ‘안철수’의 중도혁명은 이 같은 한계를 발전적으로 승화시킬 능력을 끝내 보여줄 것인가 여부에 달려 있다. 결국은 정책이다. 그 어떤 요소도 변수로 작동하지 못할 시대정신과 민심을 오롯이 담아낸, ‘치우치지도 쉽게 변하지도 않는’ 신실한 ‘중도정책’으로 새로운 감동을 만들어내어야만 비로소 길이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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