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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도선 언론인 (사)선진사회만들기연대 편집위원,운영위원 |
박 대통령은 최순실게이트 폭발의 단초가 된 미르·K스포츠재단의 불법 모금 의혹에 대해 ‘자발적 모금’ ‘순수한 의도’ ‘해외 순방 성과’ 등의 한가한 상황 인식을 드러냈다. 그러나 최 씨가 대통령 연설문과 국무회의·수석비서관회의 자료를 비롯한 국가기밀들을 미리 입수해 손질까지 한 사실이 폭로되자 비로소 손을 들었다. 박 대통령은 지난 25일 대(對)국민 사과 기자회견에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꼬리짜르기 식 해명과 영혼 없는 '찔끔' 사과가 발목을 잡았다.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는 군색한 변명이 성난 민심에 불을 질렀다. 1분40초짜리 기자회견은 파문을 가라앉히기는커녕 일파만파 확산시키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그 통에 정국을 다시 주도할 요량으로 급하게 내던진 개헌 카드는 ‘최순실 쓰나미’에 휘말려 하루도 채 못 가 약발이 다하면서 박 대통령의 존재감만 떨어뜨리고 레임덕을 재촉한 꼴이 됐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연설과 홍보 분야에서 최 씨 의견을 들었으나 청와대 및 보좌 체제가 완비된 뒤에는 그만뒀다고 했고, 독일로 잠적한 최 씨는 국내 언론과의 현지 인터뷰에서 국가기밀이나 국가기록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전부 거짓말이다. 최 씨가 올해까지도 가공할 정도로 국정 곳곳에 관여한 증거가 한둘이 아니다. 아무리 대통령의 40년 지기라지만 아무 직책도 없는 최 씨에게 매일 30cm 두께의 문건을 보내고 이메일로도 보고한 자들이 대통령 최측근들이라니 기가 막힌다. 박 대통령 의상을 대부분 그녀가 골랐다는 대목도 어이없다. 어쩐지 대통령 행색치곤 어색하고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이 파다하더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대한민국의 존엄을 짓뭉갠 최 씨의 국정 농단 전모가 속속 드러나자 국민은 경악과 분노를 넘어 허탈에 빠졌고 박 대통령은 아연 사면초가로 몰렸다. 이젠 여도 야도, 진보도 보수도 모두 적이다. 대학생과 교수들의 시국 선언이 줄 잇고 시민들도 들고 일어날 기세다. 대통령도 잘못하면 국민이 회초리 드는 게 당연하다. 다만 대통령을 너무 몰아붙이면 나라가 결딴날 수도 있다는 게 문제다. 지금 같은 경제와 안보 위기 국면에서는 더욱 그렇다.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종북 세력에 굿판을 벌여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온 국민이 수십 년에 걸쳐 어렵사리 쌓아올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한순간에 무너뜨린다면 더없이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는 국정을 파탄지경에 몰아넣은 원인을 찾아내 합당한 대책을 세우는 게 바람직하다. 그 시동은 오롯이 박 대통령 본인 몫이다. 무엇보다 최태민·순실 부녀의 미몽에서 깨어나는 게 먼저다. 일각에서는 37년 전의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과도 연루됐다고 의심하는 이 고약한 인연을 정 끊지 못하겠다면 대통령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한다. 국내외에서 잇따라 제기되는 ‘사교(邪敎)’ 의혹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역대 정권의 비선 실세인 ‘소통령’, ‘홍삼트리오’, ‘봉하대군’, ‘영일대군’이 모두 감옥에 갔다. 최순실 씨도 당장 소환해 법정에 세워야 한다. 검찰로 안 되면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이참에 전면 개각과 함께 비선에 의존하는 음습한 국정 운영을 지양하고 국무위원이 재량껏 일하는 관행을 확립해야 한다. 아직도 대통령 치마폭에 숨어 눈치나 보는 비겁한 참모들의 물갈이도 시급하다. “의혹만으로 내 사람을 자르면 누가 나를 위해 일하겠느냐”는 황당한 논리로 시정에서 간신배로 지목한 ‘문고리 3인방’과 우병우 민정수석,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등을 계속 끼고돌다간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모른다.
박 대통령이 진심으로 잘못을 반성하고 대선 공약인 국민대화합에 몰두한다면 임기가 1년 4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얼마든지 국민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자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만 바라보고 본인의 비정상부터 정상화해야 한다. 야권도 무책임한 선동으로 정국 혼란을 부채질했다간 내년 대선에서 민심의 부메랑을 맞기 십상임을 망각해선 안 된다. 국정 붕괴만큼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대국적 견지야말로 최고의 선거전략이다.
[프로필]
- 백석대학교 초빙교수
- (전) 연합뉴스 동북아센터 상무이사
- (전) 연합뉴스 논설실장
- (전) 연합뉴스 경제부장, 워싱턴특파원(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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