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세제개편안에 대한 한국납세자연맹 입장 -전문-
조세원칙에 어긋나는 세제개편안을 비판한다
좋은 세제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며 조세중립적이어야 한다.세금은 국민의 경제적 의사결정을 불필요하게 왜곡해서는 안 되며, 납세자가 자신의 세 부담을 쉽게 이해하고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조세의 기본원칙에 충실하기보다는 이미 지나치게 복잡한 부동산 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특정 정책목적을 세금에 과도하게 부여함으로써 조세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번 세제개편안에 반대한다.
1. 복잡한 세법을 더 복잡하게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린다
좋은 세제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부동산 관련 세제개편안을 읽다 보면 “이 개편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조세전문가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답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부동산 세제의 복잡성은 이미 일반적인 세법의 복잡성을 넘어선 지 오래다. 주택 수, 거주 여부, 조정대상지역 여부, 고가주택 여부 등에 따라 규정이 달라지고, 각각의 규정에는 또 다른 예외와 특별규정이 존재한다. 더욱이 이러한 규정은 정권과 정책 방향에 따라 수시로 개정돼 왔다.
‘양포세무사’(양도소득세를 포기한 세무사)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현행 양도소득세와 종합부동산세 관련 규정을 직접 읽어보면 이러한 현실에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세제의 복잡성은 정책입안자에게도 문제다. 기획재정부 세제실 공무원조차 복잡하게 얽힌 세법의 모든 상호작용을 파악하기 어렵고, 세제개편 이후 실제로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정확하게 예측하기 쉽지 않다.
최근 제기된 ‘부부 공동명의 주택에 대한 다주택 종부세 부과’ 논란이나, 직장 근무·자녀 교육·임차거주 등 불가피한 사정으로 본인이 소유주택에 거주하지 못하는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세 논란은 복잡한 부동산 세제가 어떤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들어내는지를 잘 보여준다.
세제가 단순해야 납세자가 자신의 세금을 스스로 계산해 성실하게 납부할 수 있다. 또한 간편하고 예측 가능한 세법은 경제주체가 미래의 세 부담을 예측할 수 있게 함으로써 시장의 경쟁과 효율적인 자원배분에도 기여한다.
지금처럼 세법이 삼차방정식을 넘어 암호문 수준으로 복잡해지면 납세자는 자신의 세금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이해하기 어렵고, 세제가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면서 정부에 대한 불신을 갖게 된다.
과도하게 복잡한 세제는 납세자와 과세관청 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행정비용도 증가시킨다. 여기에 납세자가 세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가산세까지 부담하게 되면 불신을 넘어 정부에 대한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
세금은 단순히 법률에 근거해 부과된다는 이유만으로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이 그 세제가 공정하고 합리적이라고 받아들일 때 비로소 조세의 정당성이 확보된다.
결국 조세제도는 국가의 강제력만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지속되는 제도다. 이번 세제개편안은 이러한 신뢰를 회복하기보다는 오히려 떨어뜨릴 우려가 있다.
2. 비과세·감면·중과세는 수평적 공평과 조세중립성을 훼손한다
좋은 세제는 동일한 담세력에 대해서는 동일한 세금이 부과되는 수평적 공평이 지켜져야 한다. 이는 조세가 가계와 기업 등 경제주체의 의사결정을 불필요하게 왜곡하지 않는 조세중립성과도 연결된다.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에게만 비과세·감면 혜택을 주거나 특정 행위에 중과세를 하는 제도가 많아질수록 동일한 경제적 능력을 가진 사람 사이의 세 부담이 달라지게 된다.
특히 비과세와 감면은 조세체계를 복잡하게 만드는 주요 원인이므로, 특별히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최소화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년 세제개편안의 상당 부분이 조세감면 규정으로 채워지고 있다. 법률의 명칭은 ‘조세특례제한법’이지만, 실제 내용은 오히려 ‘조세특례촉진법’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다.
세금은 원칙적으로 경제활동의 결과에 따라 동일하게 부과하고, 특정 행위를 유도하기 위해 세금을 차별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은 최소화해야 한다.
3. 부동산 세제에서 정책적 목적을 걷어내고 조세의 기본에 집중해야 한다
주택가격은 공급과 수요뿐만 아니라 부동산 대출정책, 인플레이션, 시중 유동성, 다른 투자기회의 수익률, 연금에 의한 노후소득 보장 여부, 교육환경, 수도권 선호, 신축주택 선호, 인구구조 변화 등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주택가격에 미치는 세금의 영향만으로 주택가격을 안정시키겠다는 접근에는 한계가 있다.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에서는 주택 세금을 인상해 주택가격을 안정시키려는 정책이 추진됐지만, 결과적으로 부동산 시장의 불안과 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해소하지 못했다. 이는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에도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럼에도 다시 부동산 세제를 주택가격 안정이라는 정책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면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가능성이 있다.
조세에는 재정 확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세금과 정책적 목적을 가진 세금이 있다. 담배세나 주세처럼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정책적으로 개입할 필요가 있는 분야도 있지만, 정책적 조세를 과도하게 확대해서는 안 된다.
특히 부동산 세제에서는 정책적 기능을 과도하게 부여하기보다 재정 확보라는 조세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단순하고 중립적으로 설계할 필요가 있다.
조세의 기본원칙에서 보면 취득세와 같은 거래세는 낮추고, 보유세는 조세중립성을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재설계하며, 양도소득세는 각종 비과세·감면을 최소화하고 주택은 장기간 보유하는 자산, 명목가격 상승에 상당 부분이 물가상승을 포함할 수 있는 자산, 행복의 공간 둥을 감안하고 주거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에서 적정한 단일 또는 단순한 세율체계로 과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한국납세자연맹은 장기적으로 거래세 부담은 낮추고, 보유세는 조세중립적으로 재설계하며, 양도소득세는 과도한 비과세·감면을 줄이는 방향으로 부동산 세제를 근본적으로 개편할 것을 제안한다.
4. 부동산 세금은 다른 경제주체에게 전가되고 예상하지 못한 초과부담을 발생시킨다
기획재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에 따른 세 부담 귀착 효과와 관련해 서민·중산층의 세 부담이 1조 2,258억 원 감소한다고 밝히면서도 구체적인 세부 산출근거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설령 이러한 추계의 계산 과정이 합리적이라고 하더라도, 단순히 법률상 세금을 누가 부담하는지만을 기준으로 세 부담의 귀착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경제학적으로 세금은 가격을 통해 다른 경제주체에게 전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세금 역시 마찬가지다. 집주인에게 부과된 세금이 주택가격이나 임대료에 반영되면서 세입자에게 전가될 수 있다. 결국 집주인에게 부과한 세금의 상당 부분을 세입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가 부담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또한 조세중립성이 깨진 세금 때문에 발생하는 경제적 비효율을 경제학에서는 ‘초과부담’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취득세 때문에 주택을 구입하지 않고, 양도소득세 때문에 주택을 팔지 않으며, 보유세 때문에 자신에게 필요한 주택의 보유를 포기한다면, 단순히 세금만큼의 돈이 납세자에서 정부로 이전되는 것과 별개로 경제 전체에서 사라지는 가치가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초과부담이다.
문제는 정책입안자가 이러한 초과부담을 사전에 정확하게 측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복잡하고 차별적인 부동산 세제가 경제주체의 수많은 의사결정을 왜곡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초과부담을 발생시키고,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의 후생을 감소시킬 수 있다.
세금으로 거둬들이는 세수만 볼 것이 아니라 세금 때문에 경제 전체에서 사라지는 가치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 참고로 한국납세자연맹은 2020년 발표한 자료에서 1999년부터 2018년까지 20년간 부동산 관련 세금으로 거둬들인 세수가 총 578조 원이며, 이를 2019년 말 화폐가치로 환산하면 약 786조 원에 해당한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높은 부동산 세금이 전가되어 집값 상승의 주요 원인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자료다.
5.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와 지역균형발전은 상충될 수 있는 목표다
정치권에서는 서울과 수도권의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주택공급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수도권의 주택공급 확대는 주택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는 반면, 수도권으로의 인구 유입을 촉진해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다른 정책목표와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은 수십 년 동안 수도권에 일자리와 교육·의료·교통 인프라를 집중하고, 이에 맞춰 주택공급도 확대해 온 결과와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를 주장할 때에는 집값 안정이라는 장점뿐만 아니라 수도권 인구집중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부작용도 함께 비교·형량해야 한다.
주택정책과 조세정책, 국토균형발전 정책을 서로 분리해서 볼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국가정책의 관점에서 그 효과와 부작용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한국납세자연맹은 부동산 세제의 목적을 지나치게 많은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확대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좋은 세금은 단순하고, 예측 가능하며, 공평하고, 중립적이어야 한다.
특정 지역의 집값을 잡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다주택자의 행동을 바꾸기 위해 세율을 차별화하며, 특정 요건을 충족하는 사람에게 비과세·감면을 제공하는 방식이 반복되면 세법은 더욱 복잡해지고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은 떨어진다.
2026년 8월 19일
한국납세자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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