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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화된 수평화
얼마 전에 집 근처에 있는 고등학교 앞을 지나게 되었다. 열 명 정도의 학생들이 앞서 가는데 그 중 8명이 롱패딩을 입었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과장은 아니었나 보다. 그때 따뜻하겠다는 생각보다 섬뜩하다는 느낌이 강했다. 색상도 전부 검정색 일색이었다. 교복도 아닌 자유복인데 거의 모든 학생들이 동일한 복장에 동일한 색상의 옷을 입고 있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런 집단주의적 생활방식은 종국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 그들이 커서 이 사회의 중추세력이 되었을 때 이 사회는 어디로 가게 될까.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키에르케고르는 ‘수평화’라는 개념을 그의 철학에 도입했다.
그는 어느 시대고 그 구성원들을 일정한 관계로 맺어주는 통일된 원리가 필요한데 고대에는 감동이 그 역할을 수행했지만 현대는 시기(猜忌)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고 말한다. 시기란 다른 사람이 가진 그 어떤 것을 자신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한다. 시기심에 의해 사람들은 그의 소유 나 생활방식에서, 의견이나 심지어 신앙에서까지 다른 사람과 같아지길 원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생활 방식을 그대로 모방하려는 사회현상을 수평화라 불렀다. 이를 사르트르는 순응주의라고 표현했지만 내 관점에서 볼 때는 수평화가 훨씬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집단화된 수평화
사람들은 모두가 동일하고 어느 누구도 자기보다 더 뛰어나지 않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이 이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 수평화는 복잡한 사회 계층 때문에 파편적으로 적용되어 결국 끼리끼리 집단화를 가져온다. 이런 의미의 수평화와 집단화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을 잘 설명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기도 하다.
한때 고교 졸업생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했다.단순히 교육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었
다.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집단에 속하지 못하면 낙오자란 인식이 그들에게, 그들의 부모에게 그렇게 하게끔 만들었다. 젊은이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결혼식을 예식장이라는 기계적 공간에서 아무런 고민 없이 거행한다. 친구가 구찌 가방을 사면 내 가방도 구찌여야 하고,한 아이의 엄마가 200만 원 하는 유모차를 사면 다른 엄마도 200만 원짜리 유모차를 사야 한다. 사진찍기가 유행하니 사진의 실력과 관계없이 너나없이 데세랄을 들고 다닌다.
이런 집단적 현상은 키에르케고르의 수평화 개념과 꼭 맞다. 한 사람이 줄을 서면 왜 줄을 섰는지 묻지 않고 같이 줄을 선다. 줄에서 이탈한 사람은 아웃사이더가 된다. 그 범주 안에 있는 사람들은 동류 혹은 연대 의식을 갖고, 이 집단보다 뛰어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시기의 눈으로, 그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멸시의 눈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더하여 들뢰즈의 층이론을 갖다 붙이면 완벽한 설명이 된다. 집단은 갖가지 층을 구성하고,
구성된 층을 서열화하고야 만다. 서열화된 층은 필연적으로 공고해질 수밖에 없다. 그 수없이 많은 층들은 부딪히면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부자와 가난한 자, 1류대학·2류대학·3류대학, 수도권과 지방,대기업과 중소기업, 이제는 하다못해 남자와 여자가 마초이즘과 메갈리즘이라는 갈등적 언어로 서로 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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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
수평화, 집단화와 자본주의 결합
좋은 쪽에 속하려는 인간의 본성이야 어디나 같겠지만 집단에 끼이지 못한 사람에 대한 멸시는 다른곳보다 잔인하다. 분양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임대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주지 않는다. 집값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지는 시설은 전부 혐오시설이 된다.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다른 게 아니라 틀린 것이다.
수평화와 집단화는 계층으로 분화하면서 저열한 자본주의 속성까지 갖추고 있으니 그들이 열등하다고 여기는 계층은 하늘 아래 설 곳이 없다. 이렇게 사회는 물과 기름으로 나눠 서로 반목과 질시로 가득하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은 선량하지만 일부사람들이 그렇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슬쩍 면죄부를 준다. 우리 사회에 면죄부를 받아도 좋을 사람은 없다. 그들을 보고 침묵한 사람도 그들과 같다.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롱패딩을 입은 이 땅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그 사회는 어떤 사회가 되어 있을까. <글/ 조영석 부천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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