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주 그리고 호주인
호주 이민자의 한 사람으로서 호주라는 나라와 호주인들을 표현한다는 것이 객관적일 수는 없다. 다만 버스 운전이라는 일의 특성상 불특정 다수의 호주인들을 매일 접하며 살고있는 나는 자연스럽게 그들과 나를 비교하게 되었고, 이러한 비교를 통하여 자연스럽게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인으로 살아갈 수도, 그렇다고 완전한 호주인으로 살아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느낀다.
어렸을 때 이민을 와서 이곳의 교육을 받고 대학생이 된 딸들은 호주의 문화에 근거하여 한국을 바라보고 이해한다. 이 부분은 내가 딸들과 대화를 나누며 느끼는 바다. 딸들은 한국의 문화를 알고 이해하지만, 호주에서의 교육 과정을 통하여 많은 부분이 자연스럽게 호주의 문화에 동화되었다.
나는 그런 부분을 우려하지는 않지만, 한국 문화를 주제로 적극적인 대화를 유도한다. 딸들이 호주와 한국의 문화 차이로 느끼는 정체성의 혼란 대신, 문화의 다양성에 대한 인식과 수용에 대한 자세를 배웠으면 하고 바라기 때문이다. 호주의 문화를 수용하여 한국 고유문화의 장점들과 연결함으로써 두 문화를 통합시킬 수도 있지 않겠는가. 차이점이 강조되면 분리가 되지만, 수용이 강조된다면 문화의 결합을 이룰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호주가 인종차별이 심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말로 표현하고 싶다. 호주는 세계에서 다문화 국가(Multicultural Country), 다문화주의를 가장 잘 정착시킨 나라 중 하나이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애들레이드는 남호주(South Australia) 주의 주도로 약 120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세계 100여 국 이상의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어떠한 심각한 인종차별도 공공장소에서 목격한 사실이 없다. 법적으로 인종차별은 범죄로 간주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다문화에 대한 거부감 등을 인종차별적 표현으로 내뱉는 발언 등은 접할 수 있으나 심각하지는 않다는 말이다.
버스 운전을 하다 보면, 심각하지는 않아도 여러 경우의 인종차별적 상황을 접하기는 한다. 한 번은 한 백인 남자가 내가 운전하는 버스에 탑승하며 나이 든 중국 여성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 이를 목격한 나는 운전석을 빠져나와 그에게 “즉시 당신의 발언을 취소하고 그녀에게 사과하시오.”라고 요구하였다. 나 또한 아시안으로서 그에게 분개하였기에 사과를 요구한 것이었다. 그는 격하게 반항하며 거부했는데, 다른 백인 승객들이 그에게 다가가더니 “당신은 분명히 하지 말아야 할 표현을 사용하였다. 당신은 그녀에게 사과해야만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포인트는, 인종차별이 전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시민들은 다문화에 적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 호주의 다문화가 현재 호주의 근간을 지지하고 있는 하나의 중요한 축이고 힘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호주의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곳곳에 붙어 있는 〈Real Australian says “Yes” to Refugees(진정한 호주인들은 난민자들에게 Yes라고 합니다)〉라는 포스터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호주는 느리다?
느린 정도가 아니라 ‘매우’ 느리다. 중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일에서는 답답할 정도로 느리다. 반면 긴급한(Urgent) 상황, 소위 비상사태에는 모든 전력을 투입하는 신속함과 그 해결 능력을 보여준다. 도로공사만 해도 그렇다. 한국 같으면 보름 만에 완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것을 몇 개월에 걸쳐 공사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버스 운전사로서 속이 터진다. 공사로 인하여 우회하거나 지체되는 통에 버스 운행이 지연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적으로 한국인인 나의 기준이며 판단일 뿐, 정작 호주인들은 불평하지 않는다. 모든 공사들은 시행 전 지역자치구(Council)를 통하여 시민 대표자들로부터 공사의 필요성과 타당성, 예산 심의를 검증받은 후 정부에서 진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반 시민들은 아무리 장기적인 공사여서 불편을 주더라도, 그 공사가 시민의 편의를 위하여 장기적으로 꼭 필요할 것이라는 사전 인식을 하고 있다. 또한 공사장의 인부들은 대부분이 지역별 구청(Council) 소속의 공무원들이다. 그들은 전혀 공사의 속도에 관심이 없다. 속도보다는 안전사고와 관련된 모든 규정의 절차에 따라 공사를 진행한다. 결국 한국인의 기준으로 볼 때는 그 속도가 무척 느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견습공으로 나가기 전, 공사장에서 일하기 위해 안전교육 이수증(White Card)을 발급받아야 하는 교육 과정이 있었다. 그 안전교육 과정의 일반적 규정은 1900년 초부터 보완(Up Date)되어오고 있다고 했다. 안전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규정을 신설하여 통합 규정에 포함시키는 것이다. 그 과정이 100년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이 호주를 매우 느린 나라로 느끼게 한다. 사람들이 느린 것이 아니라, 느림의 모습 속에 안전과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규정과 원칙들이 존재한다. 한국의 모습과 대조되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분명 빠름의 미학도 있겠으나 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안전사고 발생에 대한 명확한 원인 규명도 없이 처리되는 부실공사,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한국의 안전사고와는 달리, 느리지만 하자 없는 완벽한 공사와 철저한 안전사고 규정에 따른 절차를 최우선으로 하는 호주. 한국인인 나로서는 호주의 느린 처리들에 답답해하면서도, 한국의 빠름과 호주의 느림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글/ 김일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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