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을 보는 세간의 시선을 의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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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석 교수 |
아름다운 노년을 보내기 위해서는 경제력, 취미, 인간관계, 건강 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 또는 사회적 분위기다. 건강은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출발점이 되며, 이에 대한 욕구는 가장 본능적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노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는 사회적 분위기로 노년의 아름다움은 완성된다.
일본의 3대 테마파크 중 하나인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17세기 네덜란드 왕궁의 거리를 재현하였다하여 ‘일본 속의 작은 네덜란드’라 불린다. 나가사키 현 사세보 시에 있는 하우스텐보스는 관람하는데만 하루가 걸릴 정도로 큰 테마파크다. 우리나라로 보면 에버랜드, 서울랜드, 롯데월드와 비슷한 곳이다.
이곳에 가보면 우리나라와 일본의 노인 문화가 얼마나 다른지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유원지에는 아이들이나 젊은 사람이 대부분이고, 노인은 아예 없거나 말 그대로 가뭄에 콩 나는 정도다.
반면 일본의 하우스텐보스에는 아이들보다 노인들이 더 많다. 일본의 오래된 술집이나 여곽에 가보면 여지없이 나이든 할머니가 손님을 맞이한다. 손님이나 손님을 맞는 할머니나 아무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다.
이처럼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활발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우리로서는 많이 부럽다. 우리나라에서는 노인이 홀로 지키는 슈퍼마켓에는 손님들이 들어가지 않는다. 매장이 지저분하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 아니다. 노인이기 때문이다.
두 나라 문화가 유사한 점도 많지만 노인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은 많이 다르다. 일본에서는 나이가 들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사회 구성원은 거기에 걸맞은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늙으면 용도가 끝났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경비원이나 하는 사람으로 치부한다. 나이든 사람에 대한 용도폐기가 지금처럼 빠르고 확실한 적은 없었다.
노인 전문가인 미국의 카우길과 홈즈(D. O. Cowgill & L. D. Holmes)는 노인들만이 가지고 있었던 지혜와 지식이 정보화 사회에서는 더 이상 종전과 같은 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사회가 현대화 될수록 노인의 지위는 낮아진다는 현대화이론을 구축하였다.
카우길과 홈즈의 말이 타당하다면 동일하게 현대화된 사회에서는 노인의 지위는 동일하게 하락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보다 훨씬 더 현대화된 일본이나 미국, 영국에 비해 우리나라 노인의 사회적 지위는 훨씬 더 낮다.
이처럼 한국의 노년 생활이 추레해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 이유를 사회적 분위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 신속한 자본주의, 외모지상주의, 성숙한 노인상의 부재, 그리고 노인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무관심한 정부’에 터 잡는다고 본다. 본질과 현상이 분리된 데도 그 원인이 있다.
빨리빨리 문화와 신속한 자본주의는 근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형성된 우리나라의 독특한 정서 혹은 분위기다. 세칭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서 우리의 부모는 쉴 새 없이 일했고, 그것도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안 됐다. 이런 문화는 어느 정도 살 만한 이 시기에도 우리 몸속에 유전자로 내재해 우리를 옥죄고 있다.
기업은 대학교 졸업생들을 현장에 바로 투입할 수 없다고 아우성이다. 직업 교육은 원래 기업의 몫이다. 앞서 가는 차가 조금만 늦어도 뒤에 오는 차는 참을 수 없다. 전철 운행 시간이 길어져도 참을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노인들의 느릿한 몸동작을 참을 수 없다.
근대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 사회는 절름발이가 되었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에 걸맞은 문화적 소양이나 성숙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교육은 실패했다. 만약 경제성장이 완만하게 되었고, 그 완만함 속에 문화가 발전하고 사회 구성원이 성숙할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모든 사회문제가 이토록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노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은 외모지상주의와도 연결되어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성형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다. 기형적인 모습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당연히 성형수술이 필요하지만, 어떤 모델을 정해놓고 자신을 그 모습에 맞추려는 젊은이들이 넘쳐난다. 가장 개성적인 젊은 세대가 몰개성적인 성향을 보여주고 있다.
이렇게 외모에서 모든 가치를 찾는 세대는 그렇지 못한 외모를 폄훼할 수밖에 없다. 그 가운데 노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얼굴에 검버섯이 피고, 깊게 패인 주름, 꿈 뜬 행동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속내는 분명하다.
젊은이들이 모이면 성형 이야기, 중년들이 모이면 건강 이야기 이렇게 단순화된 성향은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는데 인색하다. 좀더 풍요로운 생각이 가득할 때 노인들에 대한 시각이 달라질까.
올바른 노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을 형성하는데 지장을 준다. 현재 노인들 거의 대부분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 왔기 때문에 교양을 갖추거나 나이에 맞는 성숙한 사고를 형성한다는 것이 참 어려웠다.
늙음으로서 나타나는 터널 효과까지 겹쳐 유연한 사고를 갖는 게 힘들었고, 이로서 바람직한 노인상을 만들지 못했다. 의심과 분노와 상실감으로 가득 채운 노년은 본인도 힘들지만 바라보는 이도 힘들다.
정부와 사회는 노인을 위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 전혀 무관심하다. 일본은 매년 9월 15일을 ‘경로의 날’로 정해 놓았는데, 오늘의 일본이 있게 한 노인을 경애하고, 장수를 바라는 뜻이다. 미국도 1978년 9월 첫 월요일을 할아버지, 할머니 날로 정해 이 날을 기리고 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관광지에서, 극장에서, 서점에서 젊은 사람과 똑 같이 문화를 즐기고 인생은 끝까지 달리는 마라톤임을 입증하듯 의욕적으로 사는 모습이 낯설지도, 이상하지도 않다.
우리처럼 용도가 다한 존재라는 인식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도 이런 모습이 일상적이어서 누가 봐도 더 이상 생경한 눈으로 보지 않는 시대가 어서 오기를 소원한다. 먼저는 노인 스스로 존경 받을 수 있도록 행동거지를 조심해야 하고, 사회적으로도 노인을 보는 시각을 달리할 수 있도록 제도적, 문화적 뒷받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프로필
대학과 대학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REM 연구소 소장과 부동산포럼 아카데미 원장을 역임했다. 이 기간 동안 인하대학교, 경기대학교, 한성대학교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자산 증식과 관리에 관한 강의를 했고, 경기도 포곡중학교와 동원고등학교 등 중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을 대상으로 노년의 자산관리에 관한 강의를 했다.
KBS 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에 출연한 이후 본격적으로 노년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노년의 문제를 오로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바라보는 세간의 인식을 벗어나 어떻게 하면 좀 더 행복한 노년을 보낼 수 있는지 연구하기 위해 현재 심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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